20.12.19-25

2020. 12. 29. 10:28함께 하는 시간/w. Crystal Exarch

(말없이 노을을 바라본다.)

(살금살금 인기척없이 뒤로 다가간다. 네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만 바짝 붙어선다.)

... ... ... (조용히 냄새를 맡는다. 이 냄새는... 갑작스럽게 몸을 돌려 당신을 바라본다.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뭘 하고 있나?

...앗. 다음엔 페오에게 기척뿐만 아니라 향까지 없애달라고 해야겠어. (금방 들켜버려서 꽤 불만족스러운 모양이다.) 뭘 하고 있긴, 라하가 보고 있는 걸 같이 보고 있었지. (하지만 네가 정확히 뭘 보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하... 그대도 보고있었다니, 나만 좋아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몇 번을 봐도 질리지가 않는듯 해. 벌써 사라져버렸지만. 조금밖에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지경이군. (같이 보고 있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노을을 보고 있었구나!) 라하가 유독 노을을 좋아하는 것 같아. 전에 나와 함께 모험했다던 꿈의 하늘도 노을져서 타오를 듯 붉었잖아? 하루에 한 번밖에 못 보는 광경인데 그걸 백여 년 동안은 볼 기회가 없었으니... 그래서 더 소중하고 질리지 않는 걸지도 모르지.

그런 걸까... 뭐, 그래도 같이 볼 수 있어서 좋았네. ...그대가 있는 걸 조금 늦게 안 것 같지만. 별도 보고 들어갈까, 아니면 지금 들어갈까..

앞으로는 매일 볼 수 있을 테니까, 네가 전에 말했던 대로 질릴 때까지 함께 보자. 노을도 별도, 음... 그리고 겨울에만 볼 수 있는 라하 눈사람도? (키득키득.) 라하 눈사람도 보고 별도 본 뒤에 들어가는 건 어때?

그래, 노을도, 별도, 라하 눈사람도... ... ...? 눈사람...?

눈사람! 대응접 광장에 엄청 큰 눈사람 있던데. 눈도 붉고 귀도 있는 게 영락없이 라하야.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던걸. 참, 꼬리는 없던데 기술부족으로 못 만들었나 봐. (전혀 모르는 눈사람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이야기한다...!)

(당신을 조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증거가 없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그럼 한 번 보러 가볼까...

왜...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봐. 어둠의 전사를 못 믿는 거야? (잔뜩 서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네 팔짱을 끼고 대응접 광장 쪽으로 걸어간다. 과연, 제 키의 두 배만한 대왕 눈사람이 크리스탈 타워로 들어가는 계단 아래쪽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저것 봐. 귀에 리본도 달려있어!

... ... ... ... ... ... ... 나를 본딴 눈사람이라고? ... ... ... ... (뭔가 중얼거린다. 파이어, 아니, 파이쟈를...)

...!! (네 말을 들었다. 황급히 네가 들고 있던 홀장을 잡는다! 그래도 아직 뺏어들진 않았다.)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는데 저걸 녹이려고? 저렇게 귀엽고 예쁜 라하 눈사람을? 만든 사람이 엄청나게 상처받을지도 몰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들어보고 결정하겠네.

그, 글쎄. 크리스타리움의 주민 중 하나겠지. 수정공을 아주 좋아하는 주민일 거야, 그러니까 라하 닮은 눈사람도 만들었지.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수정공이 자신이 정성들여 만든 눈사람을 다 녹여버린다면 분명 슬퍼할 텐데. 소중한 네 도시의 주민이잖아!

(작게 앓는 듯한 소리를 내다, 당신을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본다. 조금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입이 서서히 열렸다.) ...대신에 리본 정도는 떼어내도 괜찮겠지. 나를 본딴 눈사람이라 하니,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별로일테고.

(슬쩍 네 눈길을 피하는 표정에 아쉬운 티가 역력하다.) 리본을.. 꼭 떼어내야 하나. 눈사람의 귀를 강조해주는 특별한 악세사리인데... 목도리랑 세트로 맞춰놓기까지 했는데... 리본을 떼지 않으면 라하가 녹아내리는 거야?

'세트로 맞춰놓았'다니... 역시 그대가 만든 거로군.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저렇게나 크게. (조금 곰곰히 생각하다, 짖궂은 표정이 되었다.) 그렇지, 저 눈사람 옆에 그대를 본딴 눈사람을 하나 더 만들면 어떤가. ...그래도 리본은 떼어낼 거지만.

... ... ...왜, 왜 그런 결론이 나는 건데? 그리고 세트로 맞춰놓은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잖아, 라하 눈사람의 목도리와 리본 모두 같은 디자인에 같은 색인걸. 펜던트 거주관에 지내는 크리스타리움 주민이 만든 게 분명해, 그러니까 옆에 내 눈사람은 안 세워도 되는 거지! 리본도 막 떼면 안 되고!

주민이 만들었다면 분명 그대 눈사람도 같이 있었겠지. 그리 성대하게 언약식을 한데다, 항상 함께다니니 말이야. 수정공이 있는데 어둠의 전사가 없다니 말이 안 되지 않나.

... ... ... 그 주민이 수정공을 너무 좋아했는데, 수정공이 어둠의 전사와 언약을 해서... 엄청나게 속상하기라도 했던 모양이지. 아마 그래서 내 눈사람은 안 만든 걸 거야. (좋아! 꽤나 그럴 듯한 변명이다.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수정공의 반려가 되는 상상을 해 봤을 테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그대 눈사람을 만들어야하지 않겠나. 내가 있는 곳에는 항상 그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안 그런가? 물론 그렇게 하면 그 주민이 조금은 속상해지겠지만, 포기해야하는 것도 있는 법이지.

(반박할 수가 없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어떻게든 잔머리를 굴려본다.) 음, 그러면... 내가 저 눈사람을 만든 주민을 찾아서 한번 설득해볼게. 좀 오래 걸릴지도 몰라, 일주일 넘게 걸릴 수도 있어! 그리고 그렇다 해도 라하 눈사람의 리본을 떼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그건 생략하자. 응?

일주일 넘게 걸릴 수도 있다니... 그 사이에 눈사람이 녹으면 어떡하려고. 먼저 그대 눈사람을 만든 후에 찾아서 통보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일주일씩이나 수정공 눈사람이 홀로 있다 녹아버리면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겠나? 그대와 나 사이에 뭔가 일이 있어서 내 눈사람이 홀로 있구나, 할지도.

(...일단 리본은 어떻게든 대충 넘어간 것 같다.) 으음, 그럼... 내 눈사람은 누가 만들지? 내가 내 눈사람 만드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라하가 만들어 주겠다는 거지? 그러면 라하 눈사람보다 조금 더 크게 만들어야 해. 내 키가 더 크니까!

...그대의 두 배 정도 되는 눈사람보다 더 큰 눈사람을 나 혼자 만들어야한다고? (진심이냐는 눈빛이다. 눈사람과 당신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본다.)

그렇지만 말했듯이 내가 내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건 이상하니까. 아니면 주민들이랑 같이 만들어도 되고? 수정공이 어둠의 전사 눈사람을 자기 눈사람 옆에 만들어놓고 싶어한다면 아마 모두가 도와줄거야. (네가 주민들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못하리라 예상하기에 이런 말도 할 수 있다!)

흐음... 그래, 어둠의 전사 눈사람을 다같이 만드는 것도 괜찮겠는걸. 다들 즐거워하겠어. 빛을 몰아낸 영웅을 본딴 눈사람이라니, 게다가 만드는 것에 참여까지 할 수 있으니 어느 누가 싫어하겠나. 주민들을 모으는 것은 도와줄 수 있겠나?

(왜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이는 걸까. 조금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너를 보며 말한다. 최대한 불쌍해보이도록.) 너무해, 그러니까 지금 주민들에게 내 눈사람을 만들어야 하니 다들 모이라는 소리를... 나보고 하란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대 눈사람을 만들어야 하니 모이라고 전하라고는 하지 않았네만. 수정공이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는 듯 하니 모여달라고 전해도 되지 않겠나. 거절해도 괜찮고. (살짝 고개를 기울여 당신을 바라본다.) ...혹시 토라진 건가, 내 사랑.

...! (갑자기 의욕 만발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주민들을 불러모은다 해도 어차피 영웅을 닮은 눈사람을 만들겠다는 말은 네가 직접 해야 할 테니까. 단순히 네 말대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라면야 문제 없다!) 아니, 토라지다니. 내가 라하를 두고 어떻게? 네 말대로 하면 나도 충분히 사람들을 모을 수 있어. 대신 라하가 꼭 얘기해야 해, 응접대광장에 라하 눈사람이 덩그러니 혼자 놓여있는 게 안쓰럽다고. 알았지?

흐음... (혼자 놓여있는 게 안쓰럽다고 얘기하지 않을 생각인 듯 하다.) 알겠네. 조심히 다녀오게.

(사람들을 모으러 가는 영웅의 뒷모습이 어쩐지 즐거워 보인다. 수정공이 주민들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말하자 발 빠른 몇몇 이들이 먼저 움직여 소식을 사방팔방에 전달한다. 어느 새 대응접광장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영웅은 그 사이를 느긋하게 걸어 네 근처로 오며 방긋 웃었다.)

(당신을 한 번 바라보고는 광장에 모인 주민들에게 눈을 돌린다.) 일단... 다들 모여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 그대들 을 부른 이유는, 어둠의 전사를 본딴 눈사람을 만들고싶어서야. '누가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광장에 나를 본땄다고 하는 눈사람이 세워져있지 뭔가. 그대들도 알다시피, 나와 어둠의 전사는 이미 언약을 했고, 항상 함께 다니지 않나. 그런데 나를 본딴 눈사람이 홀로 있다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조금 말이 길어진 것 같군. 내 말은, 그대들이 어둠의 전사를 본딴 눈사람을 만드는 것을 도와줬으면 하는 거야. (당신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짓는다.) 어둠의 전사..., 내 사랑도 승낙했고. 다같이 하면 즐겁지 않을까 해서 말이네. 다들 괜찮겠나?

... ... ...! (할 말을 잃고 너를 바라본다. 분명 부끄러워서라도 영웅을 닮은 눈사람을 다같이 만들자는 말이나 자기를 닮은 눈사람이 혼자 있으니 이상하다는 말은 못 할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운 기분에 눈만 꿈뻑이다가 주민들을 향해 절레절레 고개를 저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벌써 즐거운 얼굴로 녹지 않은 눈덩이를 뭉치기 시작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황급히 무슨 말을 하려는데 순간 아이들의 외침에 다시 말문이 막힌다. "어? 수정공! 그 눈사람 어둠의 전사님이 만들었어요. 밤에 만드시는걸 우리가 봤어요! 눈사람을 다 만들고 한참 있다가 다시 오셔서 리본을 달았어요!") 아니, 아... 그, 내가 아니야. 아이들이 잘못 본 거야. 그렇지? (너를 보며 절대 자기가 아니라고 어필을 해 보지만 아이들은 그런 모자를 쓰고 그런 옷을 입는 사람은 어둠의 전사밖에 없다며 자신들이 목격자임을 강력히 주장한다.)

(아이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작게 웃는다.) 그래, 알려줘서 고맙네. 자, 너희들도 가서 거들어 줬으면 하는데. 수정공은 어둠의 전사와 할 말이 있어서.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활기차게 뛰어간다.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당신에게로 눈을 돌렸다.) ......

........ ......음. 라하, 너도 알겠지만 펜던트 거주관에는 내 전용 거주실이 있지. 타워 안에도 우리의 공간이 있고. 그러니까, 나도 크리스타리움의 주민 중 하나야. 그렇지? 그러니 내가 꼭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

그래... 그대는 수정공이 어둠의 전사와 언약을 해서 몹시 속상했었나보군. (눈에 띌 정도로 시무룩해져있다. 시무룩한 척일지도 모른다. 공의 귀는 축 처지고 고개도 푹 숙였다. 급기야는 벗었던 후드를 쓰고야 만다!)

그.... 그렇지. 그러니까, 나는 빛의 전사이기도 한데 수정공이 어둠의 전사와만 언약을 했으니까, 그래서 빛의 전사로서는 아주 속상했던 거야. (횡설수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입을 놀린다. 잔뜩 풀이 죽어 후드까지 뒤집어쓰는 너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무릎을 굽힌다.

너보다 낮아진 눈높이로 후드 속의 네 얼굴을 슥,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후드 안으로 다가들었다! 기습적으로 네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대고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삐졌어?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웅얼대며 말한다.)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당신을 조심스럽게 떼내고는 황급히 주변을 살핀다. 주민들은 눈사람 만들기에 정신이 팔려, 이쪽을 보고있지 않았다. 당신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떼어낸다.) 삐지기는, 누가 삐졌다고 그러나.

하지만 내 하늘이자 나의 태양이 이렇게 시무룩해져서는 후드까지 푹 눌러쓰고 있는걸. (후드 안으로 손을 넣는다. 네 뺨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아니면- 이번에도 또, 삐진 척 하는 걸까? 빛의 전사가 수정공과 어둠의 전사가 언약했다는 이유로 속상해한다는 걸 핑계로 말이지.

그런 이유가 아닐세. 내가 시무룩한 건, 음... (머리를 이리저리 굴린다. 그러니까...) 그대가... ...음... ...자꾸 빠져나가려해서...?

어머나? 하지만 이번에는 라하가 먼저 그랬는걸. 내가 입맞추고 있었는데 라하가 먼저 날 떼어냈잖아. 이제 우리 둘 다 빠져나가려고 한 셈이 됐네. 그럼 공평한 거지? (씨익!)

(한숨같은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래, 공평해. 그래서... 그대가 만들었다는 건 왜 숨긴... (말하다 순간 제가 눈사람을 녹이려했던 게 생각났다. 우물쭈물하며 당신을 보다 눈을 스르르 피해버렸다.)

흐응. 말을 하다 마는 걸 보니 라하도 잘 알고 있네. 내가 만들었다고 하면 온갖 시무룩한 척을 다 하면서 눈사람을 없애려고 할 것 같았거든. 어둠의 전사는 라하에게만큼은 녹아내리는 설탕처럼 약하고 흐물거리니까, 결국 저 라하 눈사람은 사라지고 말았겠지. 아니야?

그, 아니, 아니야. 사라지지는 않았을 걸세. 그러니까...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아, 공터! 공터에 옮겼을 수도 있지 않겠나.

하지만 공터에 옮기면 사람들이 라하를 못 보잖아. 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만들었는데 라하는 내가 만든 라하를 아무도 못 보는 곳에 옮겨두려 했다니... (이번엔 제가 잔뜩 시무룩해져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내려다본다.)

(당신의 시무룩해진 모습에 크게 당황한다. 우물쭈물하며 당신을 바라보다, 당신이 만든 수정공 눈사람을 바라보다, 그 주변에서 신난 주민들을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다들 즐거워하니, 그대로 놔두도록 하겠네. 내 사랑, 그렇게나 처져있으면 내 마음이 좋지가 않아. ...기분 풀게나. 응? 내 사랑. ... ... ...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결심한 듯 당신을 바라본다.) ...눈사람의 귀에 장식한 리본도 떼어내지 않겠네.

.... (입가 끝이 씰룩이는 걸 들킬까 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을 열면 웃음이 터질 것 같다.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간신히 웅얼댄다.) ...응, 그그르 즈으, 느 르흐. (그걸로 좋아, 내 라하- 라는 말이었지만 이를 악물어 발음이 부정확하다!)

(당신의 이를 꽉 깨문듯한 말소리에 더욱 안절부절해진다.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 한 모양이다.) 주먹까지 그렇게 세게 쥐고..., 그렇게 화가 많이 났나? 손에 상처가 나겠어. 고개를 좀 들어보게. 내가 잘못했네. 이베르, 응?

(어... 어쩌지. 지금 고개를 들면 분명 웃음이 터질 텐데. 이미 입꼬리는 올라갈 대로 올라가있다. 안절부절하는 네 모습이 축 늘어져있을 꼬리까지 상상하게 만들어 결국 잇새 사이로 간헐적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킥킥대며 그래도 고개는 들지 않겠다고 도리도리.)

...? (웃음소리...? 멈칫하다 몸을 살짝 숙여 당신의 얼굴을 본다.) ... ... ... ... ...왜 웃고있는 건가? 너무 즐거워하는 것 같은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나도 알고싶은걸.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은 것도 같다.)

...!! 아, 아니야. 어둠의 전사는... 흡... 울고 있었어... 큽. 내가 만든, 라하 눈사람을 공터로 내쫓겠다고 해서. 그치만 라하가, 리본도 그대로 두고, 내쫓지도 않겠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푸흡대며 최대한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홱 고개를 들어 너를 본다.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너를 꼭 끌어안고 결국 편하게 소리내 웃는다.) 라하 눈사람이 리본을 계속 달고 여기에 있을 수 있으니까 웃어야지! 그거 알아? 저 눈사람은 쉽게 녹지 않을 거야, 내가 보존마법을 걸어놨단 말이야!

........역시 치워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 공터에 주민들을 못 오게 한 것도 아니니, 보고싶은 이가 있다면 직접 찾아오겠지. (미간이 꽤나 좁혀졌다.) 말을 번복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별 수 없지.

아, 안 돼. 내가 만든 라하인데! 라하도 지금 주민들 시켜서 내 눈사람 만들고 있으면서! 오래오래 녹지 않는 게 불만이라면 어둠의 전사 눈사람에도 보존마법을 걸면 되잖아, 둘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며!

둘을 같이 공터에 두면 되지 않겠나. 보존마법을 걸어뒀다니, 봄까지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함께 있고, 오래오래 녹지도 않고, 원하는 주민들은 찾아서 볼 수 있고. 그대가 원하는 것은 다 충족되는 것 같은데.

하지만... 눈사람이긴 해도 수정공과 어둠의 전사잖아. 수정공과 어둠의 전사는 별 일이 없으면 거의 항상 크리스탈 타워에 머물고 있으니까, 우리 눈사람도 타워 앞 여기가 맞는 자리야! (억지를 부려본다.) 사람들이 저렇게 신나서 눈사람을 만드는데, 그걸 굳이 꼭 다른 장소에 옮겨야 해...?

(당신의 주장에 말문이 막힌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당신의 주장을 파훼할만한 말을 찾아보지만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귀를 축 늘어뜨린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네. 옮기지 않도록 하겠네. 자리도 자리지만, 사람들도 좋아하니까.

(축 늘어진 너의 귀를 본다.) 라하는 우리 눈사람을 사람들이 보는 게 싫은 거야? 귀가 늘어져있어. 꼬리도 그렇겠지... 네가 정 싫다고 하면 우리 눈사람은... 공터로 옮길게. 네가 싫다는데 굳이 강행하고 싶진 않으니까...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그런 건 아니야. 그저... 음... ... 부끄러운데, 말해야하려나... (당신을 살짝 올려다본다.)

뭔데, 내 라하. 또 어떤 게 부끄러운데? 내 사랑은 너무 부끄러워하는 게 많아서 말해주지 않으면 감도 잡을 수가 없단 말이야. (아까의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는 다시 온데간데 없어지고, 귀를 네 얼굴에 바짝 가져다댄다.) 작게 속삭이듯 말해줘. 그럼 덜 부끄럽겠지?

(볼을 살짝 붉혔다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당신의 귀에 작게 속삭인다.) ...그대에게 주장으로 밀린 것에 조금 시무룩해진 거야. (당신의 귀에서 입을 떼어내고는 뒤로 살짝 물러선다. 입밖으로 뱉어내니 더욱 부끄럽다. 얼굴이 새빨개졌다.)

(웃으면... 안 돼. 웃으면 안 돼. 또 다시 실룩이는 입꼬리를 잡아채며 태연한 척 답한다.) 나는 라하가 봐 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말대로라면 우리 눈사람은 크리스탈 타워 안에 있어도 할 말이 없는 거니까. 꼭 눈사람 때문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타워에 자주 찾아오기도 하잖아.

타워 안은... 안 되지. 녹아내리면 정리하기 힘들테니. 딱히 봐준 것은 아니네만... (잠시 생각하다 짖궂은 말투로 말한다.) ...그대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것으로 할까.

응. 자꾸만 장난치는 어둠의 전사를 수정공이 너그럽게 봐 준 거라고 생각할게. 하지만 네가 라하 눈사람과 꼭 붙어있는 어둠의 전사 눈사람을 보고 싶어서 주민들까지 동원한 건 평생 잊지 못할 농담거리가 될 거야. (어느 새 영웅을 닮은 눈사람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귀가 달려있지 않다!)

평생이라니... 몇 년 정도로 타협을 볼 수는 없겠나... 제일 좋은 건 놀리지 않는 것이지만, 그럴 리는 없으니. (눈사람을 잠깐 바라보다, 다시 당신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왜 귀를 만들지 않은... ... ... 혹시, 근시일 내로 모습을 바꿀 계획이 있나?

어머나- 만약 내가 그럴 계획이 있다고 해도 주민들은 그걸 모르는걸. 라하 눈사람에게 꼬리가 없는 건 기술부족이었으니 아마 그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라하 귀는 머리 위쪽으로 나 있으니까 붙일 수 있지만, 내 귀는 양옆으로 나 있으니 눈사람에 만들어 붙이기가 어려운 거지! (그것이 꽤 마음에 드는 듯 생글대며 웃는다.) 어떻게 해, 귀에 리본은 라하 눈사람만 달고 있게 생겼네?

...그런가... 음... (잠시 쪼그려앉아서 눈을 길쭉하게 뭉쳐본다. 잘 뭉쳐지지 않고 쉽게 부서진다. 다시 일어나 곰곰히 생각하다 입을 연다.) ...고드름을 꽂아서 귀처럼 사용할 수는 없는 건가...

...고드름을 꽂아서 내 귀로 사용하면 나도 라하 눈사람 엉덩이에 고드름을 붙일 거야. 조금 녹아서 끝이 날카롭지 않고 둥근 고드름에 보존마법을 걸고 붉은색으로 염색해서 라하 꼬리라고 할 거야!

(조금 시무룩해진 모습이다. 역시 안 되나.) 하지만 눈으로 만들 수가 없는 걸 어떡하나. 아니면 그대가 뭔가 방법을 알려주게. 그대에겐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흐음- 글쎄. 어둠의 전사도 모르는 게 많은걸. 그런데 라하는 내 눈사람에 꼭 뾰족귀를 붙이고 싶은 모양이네? 뾰족모자만 쓰고 있어도 사람들은 다 그 눈사람이 어둠의 전사 모양인 줄 알아볼텐데.

내 눈사람에만 리본 장식이 있는 건 억울... 아, 아니, 둘이 같은 장식을 하고 있으면 보기 좋을 게 아닌가. 기왕이면 같은 위치에 같은 장식을 하고있으면 더욱 좋겠지.

....... (눈을 가늘게 뜨고 너를 바라본다. 방금 억울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면 내 눈사람이 쓰고 있을 뾰족모자에 리본을 달면 되겠네. 그럼 라하 눈사람이랑 적당히 비슷한 위치에 리본이 달리는 거니까!

(당신의 눈길에 눈을 슬쩍 피한다.) 모자에 리본이 달려있는 것과 귀에 달려있는 것은 느낌이 다르지 않나. 뭐랄까... 모자에 달려있으면 모자의 장식이구나, 싶겠지만 귀에 달려있으면 서로 같은 장식을 했나보네, 귀여워라, 싶지 않겠나. (...너무 억지인가?)

흐음... 방법이 있긴 있어. 눈을 귀 모양으로 만들어서 빙결마법으로 적당히 얼리고, 눈사람 머리에서 귀가 들어갈 자리를 조금 파내서 안으로 꽂아넣는 거야. 아무래도 라하만 리본을 달고 있으면 억울해서 핑계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 둘이 같은 장식을 하고 있는 건 좋으니까 봐 줄게. 그런데 같은 디자인의 리본이 더 없으니까, 라하 눈사람 귀에 달린 리본을 하나 떼서 어둠의 전사 눈사람에게 붙여야 해. (키득댄다.) 그러면... 눈사람 귀는 라하가 만들어 줄 거지? 나는 라하 눈사람에 붙일 꼬리를 만들어야겠어.

(고개를 끄덕인다. ...꼬리를 이상한 모양으로 만들지는 않겠지?) 음... 좋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도 났으니. 자, 가볼까.

(네 손을 꼭 잡고 수정공과 어둠의 전사 눈사람 옆으로 다가간다. 눈사람들 옆에는 눈덩이들이 잔뜩 쌓여 있었는데 그것을 집어들어 네게 건네고, 자신도 눈덩이 몇 개를 집어들더니 조금 길다랗고 아주 통통한 꼬리 모양을 만들어낸다.) 꼬리가 펑 하면 이만큼 통통해지지?

음... ... ...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만. 그런 상황에서 내 꼬리를 확인하지는 않으니. 너무 통통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눈으로 만든 꼬리를 보며 고개를 조금 갸웃하다, 제 눈덩이로 원뿔모양을 만든다.) 이렇게 뭉쳐서 반으로 가르면... 귀 모양이 조금은 쉽게 만들어지겠지.

...!! (네 말을 듣고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씨익 웃는다. 어쩐지 위험해보인다... 그래도 다행히 꼬리를 더 통통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눈사람 만들기를 얼추 끝낸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이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럼 빙결마법으로 조금 얼리고 눈사람에 꼬리와 귀 넣을 자리를 파내자.

(당신의 미소가 조금 두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달리 행동한 것이 없기에 불안한 채로 원뿔모양 눈덩이를 가른다. 꽤나 모양이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좋아... 내가 자리를 잡을테니, 그대가 얼려주게!

좋아. ... 블리자드만 써도 충분하겠지? 예쁘게 잘 만들어졌네, 내 귀. (키득대며 스태프를 꺼내들고 기초 빙결마법을 시전한다. 귀와 꼬리 위에 얼음서리가 내려앉는가 싶더니 눈사람에 잘 고정될 정도로 딱딱해졌다! 꾹꾹 눌러보고서야 만족한 듯 스태프를 거둔다.) 됐다, 끼워넣고... 리본을 달면!

음. (만들어진 눈사람을 본다.) 어쩐지 허전한 것 같은데... 주변에 작은 눈사람들을 더 만드는 게 좋을까. 병아리 모양으로, 아이들 눈사람도 만드는 거지.

(영웅의... 눈사람이 뭔가 너무 크다. 눈사람 머리가 작은 크기가 아닌데 그 머리 하나만큼이나 키 차이가 나다니! 하지만 이제 와서 바꾸자고 하기에도 뭣하다.) 그, 그래. 아이들... 아이들 중 한 마리는 라하 머리 위에 두는 게 어때? 그리고 눈덩이와 선물상자들도 두자.

흠... 좋아, 일단 아이들 눈사람부터 만들어볼까! 눈을 염색하기는 힘들테니, 모양만 잡아도 괜찮겠지. (당신을 바라본다. 어쩐지 무언가 불편해보인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도 있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기보다는... 내 눈사람이 너무 커, 실제로 나는 라하랑 요만큼의 키 차이밖에 안 나는데. 하지만 네 도시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시 바꾸자고 하기에도 뭐하거든. (사람들이 들을까 네 귀에 속닥거린다.)

흠... 머리 하나 정도 차이나는 건 맞지 않나. ...그 정도까지는 아닌가...? (당신의 옆에 착 붙어서서는 키를 재본다.) 뭐, 눈사람이 워낙 커서, 가까이서 보면 키 차이가 많이 난다고 느껴지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

우리 머리랑 눈사람 머리 크기는 차원이 다른걸. 하지만 라하가 괜찮다면야 뭐. 그래도 아이들 중 하나는 라하 눈사람 머리에 올려서 키 차이를 좀 줄여보고 싶어. (아이들 모양을 만들 눈뭉치에 노란색 별모양 반짝이 가루를 뿌려본다. 약간 노랗게 되었다! 눈웃음을 지으며 너를 본다!)

그대만 원한다면 셋 다 올려도 괜찮은데 말이지. 그럴만한 공간은 안 되려나... (당신의 손에서 노란 눈뭉치를 가져다 병아리 모양으로 만들어본다! 너무 작으면 눈에 띄지 않을테니, 제 머리만큼 크게 만들어본다. 그래도 눈사람에 비하면 작지만.) 자, 이렇게 하면 될까.

!! (박수를 치며 천진하게 좋아한다. 아주 마음에 드는 듯하다!) 나 사실 이렇게 커다란 눈사람 만들어 본 거 처음이야..그러니 이것도 라하와 함께 한 첫경험이 되는 거네! (주민들이 들고 온 빈 상자들을 여기저기 놓고, 페오가 가져다 준 작은 등불들 두세 개를 바닥에 놓으면!)

나도 이렇게나 큰 눈사람을 만드는 건 처음이야. 사다리를 써야할 정도라니. ... ... 비록 꾸미는 정도밖에는 거들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녹지 않으니까 이 앞에 앉아서 같이 광장을 구경할 수도 있고, 피크닉 기분을 낼 수도 있고 책도 읽을 수 있을 거야.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긴 하겠지만! (타워에서 갖고 나온 어둠의 전사와 수정공이 그려진 장식용 볼을 꺼내들었다. 어느 새 나타난 페오가 각종 조명과 작은 반짝이 공들이 잔뜩 매달린 줄 끝을 들고 있다. 줄의 한 쪽 끝을 네게 건네고, 그림이 그려진 볼 두 개를 줄에 매달았다. 페오가 쪼르르 날아가더니 그것을 크리스탈 타워로 올라가는 계단의 양쪽 기둥에 보기좋게 매달아놓는다.) 해피 홀리데이!

(장식이 가득한 줄을 바라보는 것이 어쩐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멍하니 장식을 바라보다, 당신을 바라본다.) 응, 그대도 해피 홀리데이야.

후후. 왜 그런 표정이야? 여기서 나랑 이렇게 성대한 축제일을 맞고, 장식까지 만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서?

음... 모르겠는걸. 갑자기, 모든게 꿈처럼 느껴져서 말이지. 뭐랄까... 금방이라도 깰 것만 같은, 그런 꿈 말이네. 꿈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왠지 한순간에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야.

흐음. 그러면 내가 네 곁에 있는 것도 꿈처럼 느껴져?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만 같은.

...조금은.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가, 감정이 북받칠 때...라고 해야할까, 그럴 때 그렇게 느껴지는 편이지.

(페오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꺄르르 웃었다. 원래는 벽장식이 되었어야 했을 화려한 가랜드가 나풀나풀 바람에 흔들린다. 수정공과 영웅의 모습이 그려진 장식용 볼이 흔들릴 때마다 맑은 방울소리가 났다.) 그러면 더 이상 꿈이라고 느껴지지 않게, 이런 시간을 더 많이 가질까? 우리가 어디에 있든.

나는..., 나는 좋아. 그대와 함께할 수 있다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아.

응. 우리가 서 있는 곳이 1세계이든 원초세계이든, 아니면 또 다른 어딘가이든 우린 항상 함께 하고 있을 거야. 여행도 모험도, 축제도 또 다른 즐거운 일들도 잔뜩 만들어가자. (너를 약하게 끌어안았다.) 라하, 이건 아주 오랫동안 별들을 누벼 온 여행자로서의 감이야. 조만간 원초세계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새벽 멤버들 모두. 그리고... 네가 수정으로 변하는 꿈을 자꾸만 꿔. 하지만 이전처럼 마냥 슬프기만 하진 않아. 희미하긴 하지만 어떤... 가능성 같은 게 보여.

(당신을 마주 끌어안고 등을 도닥인다.) 가능성이라... 어떤 가능성인가? 수정을 깨고 내가 나온다던가, 그런 거려나. 마치 알처럼 말이지. ...이런 건 가능성이라고 부르지 않나, 음... 여튼,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는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그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저도 모르게 생각나는 문장을 읊다가 네 붉은 눈을 마주한다.) 수정을 깨트린 라하는... 어쩌면 나와 함께 원초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걸지도.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는데...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네. 뭘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보고 연구하다보면 알 수 있겠지.

응, 꼭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라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알을 깨트려왔잖아. 이번에도 가능할 거야. 물론 라하와 함께 원초세계에 가게 되더라도, 네가 궁금해한다면 언제든 1세계의 소식과 근황을 네게 알려주고 편지도 교환해줄게. 아마 나는 두 세계를 계속 오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대가 많이 번거롭진 않겠나? 물론 원초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때의 일이니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대가 가능하다면, 부탁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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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4

 

라하 나이만큼이나, 혹은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기원을 가진 케익이야. 그 긴 시간 동안 서로의 곁에서 행복하게 지내자는 의미도 담고 있지. 너와 함께 하는 두 번째의 겨울, 혹은 언약 이후로 맞는 첫 번째 겨울이네. 이후로도 우리 계속 함께 살아가자. (바움쿠헨 선물)

(조금 머뭇거린다.) ...내가 이걸 받아도 되는 건가? 나는 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왜 없어? 라하가 계속 내 곁에 있어주잖아.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평생에 걸쳐 받을 선물을 다 받은 거야!

... ... ... ...말없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도 하는데도?

그렇지만 결국 다시 내게 와 주잖아? 그게 중요하지. 나 그걸로 라하를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다만 혹시 사고가 난 건 아닐까 걱정은 되지. (너를 꼬옥 끌어안고 뺨을 부빈다.)

나를 너무 믿는 것 아닌가. 영영 안 오면 어쩌려고. (부벼지는 감촉에 어쩐지 편안해진다. 당신을 꼭 마주안는다.) 걱정하게 만든 건 미안하네.

영영 안 오다니... 그런 말을 하는 거 보니까 정말 그러려고 했던 적이 있긴 있었나 보네... (너를 더욱 힘주어 안는다.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다.)

... ... ... 그럴 리가. 그대를 두고 어떻게 그러겠어. (당신을 약하게 도닥인다. 당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기도 한다.)

사실 그렇게 된대도 내가 뭐라 할 말 없는 입장인 건 잘 알아. 그래서 더 고마운 거야, 항상 내게 다시 와 주는 게. 그래도 네가 없는 미래를 상상하는 건 역시 슬프니까... 그런 생각은 최대한 안 할래.

할 말 없는 입장이라니, 그대 말고 누가 나에게 뭐라 할 수 있겠나. 그대는 얼마든지 뭐라 해도 돼. 정말이야. 항상 함께하기로 맹세까지 했는데, 안 그런가?

하지만 네게 뭐라고 하고 싶지 않은걸. 그래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래서 라하에게 특별히 더 많이 장난치고 있는 거지만! 항상 함께 하자는 그 약속도 꼭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 알아. (네 왼뺨에 가벼운 버드키스를 남긴다.)

(귀를 가볍게 파닥이고는 화답하듯 당신의 뺨에 입을 맞춘다.) 뭐라 하는 대신 장난치는 거였나? 앞으로는 그대의 장난을 겸허히 받아들여야겠는걸.

엄밀히 따지면 조금 달라. 장난을 쳐도 라하가 잘 받아줄 걸 알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음. 부끄러워할 뿐 싫어하진 않는다는 걸 아니까! 그러니까 네게 뭐라고 안 하는 대신 장난치는 건 아냐. 뭐라고 했어도 장난은 여전히 쳤을걸? (키득키득 웃으며 이번에는 네 입술에 쪽, 하고는 냅다 도망간다.)

잠시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 당신을 쫒아간다.) 거기 서게! ... ...그대만, 하고 가는 게 어디있나! (얼굴이 살짝 발갛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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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5

 

그... 해피 별빛축제야. 별빛로브라고 하던가, 한 번 입어봤네만...

...!! (별빛로브 옷... 안 가져왔는데! 울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별빛로브를 입은 네가 너무 귀여워서 웃고 싶기도 하고, 반은 웃고 반은 우는 모양새가 된 표정이 장관이다.) 라하가 작... 아니 너무 귀여워! 하얀 수염까지 달면 완전히 딱이야!

(작이라는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즐거운 날이니까 넘어가기로 한다.) 수염... 수염이라...

(푸웁;) 하... 할아버지. (저도 모르게 말하고는 아차 싶어 살살 네 눈치를 본다. 말없이 슬쩍 알라그 기기를 꺼내들어 촬영 버튼을 누른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100년을 넘게 살았으니. 그대에게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말이야. 안 그런가? ... ... ... 잠깐만, 이, 이 모습을 기록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니, 이미 기록한 것 같은데, 뭘 하는 건가! (조금 당황한 모습이다.)

... ... (대답을 피하며 슬쩍 기기를 집어넣고는 배달부 모그리가 가져다 준 커다란 자루를 들고 온다.) 이 안에 선물이 가득해, 라하가 지금 선물을 나눠주는 성인의 모습이 되었으니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가자! (누가 봐도 선물을 핑계삼아 말을 돌리고 있다.)

(미간을 팍 좁히고 당신을 바라본다. 사진을 지울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기세다!)

...나만 볼 수 있는 거니까 괜찮잖아. 응? 라하. 어차피 내년 별빛축제 기간에도 또 수염을 달아야 할 텐데. 응? 라하. 응? 응?

...내년에는 달지 않을 수도 있지않나. (당신이 자꾸 졸라대는 통에 조금 고민이 되는 듯도 하다...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 내년에 안 달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지금 라하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둬야지, 다시는 못 볼 할아버지 라하인데! (신빙성만 더해주는 역효과가 났다!)

앗... 음... 아, 그렇지, 내후년도 있으니까... 희귀한 모습인 거지. 그대가 그렇게 사진으로 남겨버리면 희귀한 게 아니게 되지않나.

사진으로 남기고 1년에 한 번씩만 볼게! 별빛축제 날에! 그러니까 라하가 또 다시 수염을 달면 내가 이 사진을 안 봐도 되지만 라하가 수염을 안 달면 이 사진을 보는 거야. 그러면 언제나 볼 수 있는 사진이 아니게 되니까 희귀한 거 맞지?

알라그 기기를 항상 가지고 다니니,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안 되네! 절대로!

그러면... 그러면 전에 우리 초상화를 그린 사람에게 부탁해서 그림으로 남겨놓을래. 그건 괜찮지? 그림은 심려의 방에 보관하면 되니까!

... ... ...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양이다. 한참을 더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별빛축제 때 외에는 천으로 덮어둘 거네.

천으로 덮어둔다고? 밤에 자다 깨면 네가 분명 놀랄 텐데. 유령으로 착각하고 말 거야. (키득대며 웃는다.) 그냥 뒤집어두기만 해도 충분할걸. 그래야 내가 보고싶을 때마다 몰래 보고 다시 제자리에 잘 두지.

...그럴 일 없네. 나를 뭘로 보는 건가. 그것보다, 역시 보고싶을 때마다 볼 계획이었나? 그렇다면 그림으로 남기는 것도 안 될 것 같은걸.

아... 아니야, 농담이야! 몰래 보다가 들켜서 그림을 영영 못 보게 되는 것보다 1년에 한 번씩이라도 당당하게 보는 게 더 좋아. 물론 라하랑 함께 말이지. 그러니까 그림으로 남겨놓자. 그림이 완성되면 기기에 있는 할아버지 라하 사진은 지울게!

좋아, 약속이네. ...생각해보니, 그림 크기를 얘기하지 않았군. 손바닥만하게 주문해도 되겠어. 그러면 숨기는 것도 편하겠지. (씩 웃는다.)

아, 안돼! 그런 게 어딨어, 라하 키만큼...은 아니더라도 라하 키의 반만한 정도는 되어야 내가 뿌듯하게 감상할 수 있단 말이야. 숨기는 건 배니쉬 같은 마법을 쓰면 되잖아. 그럼 어차피 내가 못 찾을 테니!

(고개를 젓는다. 어쩐지 입꼬리가 올라간 듯도 하다.) 마법이 만능이 아니라는 건 그대도 알지 않나. 그리고 크기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데, 그대를 그린 초상화도 아니고 내 초상화에 큰 돈을 쓰고싶지는 않네. (즐거워보인다!)

어머나. 돈은 내가 내면 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걸? 하지만 마법도 만능이 아니어서 숨기는 걸 잘 못하겠다는 이유로 거절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나도 이 사진 안 지울 거야! (메롱, 하며 혀끝을 조금 내밀어보인다!)

이런... 인질이 그대 손에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군. 내가 졌네. 크게 주문도록 하지. 그래도... (잠시 생각하다가, 당신의 양 뺨을 가볍게 잡아당긴다.) ...혀를 내민 것에 대한 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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