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3-18

2021. 1. 19. 11:31함께 하는 시간/w. Crystal Exarch

... ... ... (하얀 백합을 직접 키워서 선물하고 싶은데 좀처럼 하얀색이 나오지 않는다. 식물표본관 주변은 붉은색과 파란색, 노란색 백합으로 가득하다...)

(당신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깻묵과 백합 씨앗이 불량(?)인지 아닌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네가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줄도 모르고 화분에 깻묵을 뿌리고 있다. 화분이 무려 여섯 개...)

(당신이 하는 양을 조용히 바라보다, 불쑥 말을 얹는다.) ...씨앗과 깻묵은 멀쩡해보이네만... 뭔가 문제라도 있나?

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본다.) 라하, 언제 왔어? 계속 서 있었어? 네 말대로 씨앗이랑 깻묵에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계속 하얀 백합이 안 나와...

금방 왔네. 그대가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가만히 보고 있었지. 흐음... (화분들을 천천히 둘러본다.) 이렇게나 많은데, 이번에는 피지 않을까. 왠지... (세번째 화분을 가리켜본다.) 여기서 필 것 같아.

세 번째 화분? 여기서는 까만 백합만 나왔는데. 그럼 나는... (다섯번째 화분을 가리킨다.) 여기에 걸어볼래. 여기선 혼합된 색상의 백합만 나왔거든. 하얀 백합을 꼭 키워내서 라하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 이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어.

검은 것만 나왔다니, 오히려 믿음이 가는걸. 색이 잘 섞이기는 한단 뜻이니까. 사실 그대가 주는 것이라면 어떤 색이든 좋지만... 하얀색도 좋지. 백합이 자라나는 데 어느 정도 걸리나?

(잔뜩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하얀 백합이 제일 예쁜걸. 오늘은 특별한 날이기도 하니까 오늘 네게 선물하려고 며칠간 열심히 키웠는데, 백합이 자라는 데에만 거의 하루야. 이러면 오늘을 넘겨버리게 되잖아...

생각보다 빨리 자라는걸. 그래도 오늘 안에 자라지 않는다는 건 아깝지만... 흐음... 식물표본관에 성장촉진제같은 건 없으려나.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 건 역시 없겠지?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성장촉진제? 잠깐만, 들어본 적 있어. 원초세계에서 백마도사들의 무기를 만들 때 쓰는 건데 그걸 뿌리고 기원을 세 번 올리면 꽃이 빨리 핀대. 정말일까? 식물표본관에 있는 성장촉진제도 성분은 비슷하겠지?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성장 촉진제가 듣지 않거나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될까 염려스러운걸...

음... 성장촉진제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알맞은 걸 쓰고, 기원도 잘 올리면 문제없을지도 몰라. 잘못되더라도 몰볼 같은 건 태어나지 않을테니 걱정 마! 음, 라하가 나랑 같이 기원해주면 백합이 좀 더 빨리 필지도 모르겠는데?

흠... 좋아, 내가 뭘 하면 되겠나? 말만 하게! (매우 자신에 찬 표정이다!)

내가 성장촉진제를 화분에 뿌리면 라하는 홀장을 바닥에 힘차게 찍으면서 기원의 주문을 읊어 줘! '자... 시간을 앞서서 오너라. 우리에게 지금, 네 모습을 보여다오! 저 미래에 있는 아름다운 하얀 백합화여!' 정도면 어때? (어쩐지 익숙한 문장들이다. 아니나다를까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 ... ... ... ... ... ... ... ... ... ... ... ... ... ... 내가 할 일은 없는 것 같군. 가보겠네.

왜, 왜! 정말 갈 거야? 나 혼자 이렇게 잘 나오지도 않는 하얀 백합을 피워내야 한다고? 라하는 나 안 도와줄 거야? 물론 네게 줄 선물을 만드는에 네게 도와달라고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같이 하는 게 더 좋은데! (간절한 표정!)

하지만 내가 할 일이 없어보이네만. ...주문도, 마음에 들지 않고.

그... 그럼 라하 마음에 드는 기원의 말은 어떤 건데? (아까 가걸 해 달라고 고집했다간 정말로 네가 가 버릴 것 같아서 한 발 물러서기로 한다!) 생각해보니 라하가 해 주는 기원이니까 라하가 하고싶은 걸로 하면 될 것 같아!

흐음... (곰곰히 생각해본다.) ...기원의 말에 어떤 것들이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기원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고. 그것부터 알아야 할 것 같네만. (귀가 한 쪽만 까딱거린다.)

사실 나도 안 해봐서 모르는데... 우리는 백합이 빨리 자라나서 피어나길 원하는 거잖아? 그 외 마법적인 어떤 효과는 없어도 되는 거고. 그러니까 빨리 피어나라, 빨리 자라나라 하면서 기도하면 되지 않을까? (단순!)

...그럼 말을 굳이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그대 말대로 정말 '빨리 자라나라, 빨리 자라나라'라고만 해도 괜찮겠군.

그럼 해 줄 거지? (얼른 일어나 식물표본관의 연구원에게서 그리 진해보이지 않는 농도의 성장촉진제 한 병을 받아온다. 화분에 톡, 톡 몇 방울을 뿌리고 너를 바라본다!) 자라나라 백합백합, 자라나라 수정공!

(머뭇거리다, 더듬거리며 "빨리 자라나라, 쑥쑥 자라나라."하고 화분에 대고 말한다. 꼬리가 불만스럽게 좌우로 흔들린다.)

(사브작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본다. 흔들리는 꼬리 끝이 네 로브 밑자락으로 살짝씩 보인다. 늘어져 있는 걸로는 봐서는 그닥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한데.) 어머나, 라하. 그렇게 안 좋은 기분으로 기원하면 백합이 잘 자라지 못할 거야. 설마 내가 라하보고 자라나라고 해서 토라진 거 아니지?

...장난이라는 건 알지만, 반복해서 들으면 내 키가 작기때문에 불만스럽다던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지 같은 느낌을 받게돼. 더군다나 키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더욱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귀를 살짝 늘어뜨린채로 당신을 바라본다. 잔뜩 시무룩한 모양새다.)

어...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시선을 이리저리 두며 안절부절대다 네 두 손을 끌어와 꼬옥 잡는다.) 그... 여태까지 그런 느낌이었어? 난 라하의 모든 걸 다 좋아하는걸.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앞으로는 절대 그 말은 꺼내지 않을게. 평생 동안! (덩달아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네 눈치를 살짝 살피다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금방이라도 땅을 파고 들어갈 듯 잔뜩 오그라든 채다...) 미안해... 내가 라하에게 상처를 줬어...

(꼬리를 몇 번 더 흔들다, 작은 한숨을 조용히 내쉬고는 당신의 품에 이마를 툭 기댄다.) 싫다고 단호히 말하지 않은 내 탓도 있지. ...이제는 괜찮네. 괜찮아.

(네 뒷머리를 가만가만 쓸어주다가 팔을 좀 더 내려 꼭 끌어안는다.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품에서 너를 살짝 떼어내고 시선을 맞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당신의 눈물에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안절부절한다. 눈가를 엄지로 조심조심 닦아내고, 당신을 꼭 껴안고 등을 토닥인다.) 왜, 왜 울고 그러나. 응? 울지 말게. (당신을 토닥이다, 몸을 살짝 떼내어 당신의 얼굴을 살피다, 다시 당신을 토닥이길 반복한다.)

그렇지만 나 때문에 라하가 상처받았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소리잖아, 내게 이렇게 말할 정도면. 내가 너무 눈치없이 굴고 제멋대로 행동해서 내 소중한 라하를 힘들게 한 셈이잖아... (눈물을 보이기 싫어 네 어깨에 얼굴을 폭 묻는다. 로브에 약간의 눈물자국이 남을지도.)

아니야, 아니야! 그정도는 괜찮아. 상처라기보다는, 그저 조금 서운했을 뿐이었어. 정말로 그 뿐이었네.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정말로 괜찮은 걸. (당신을 열심히 토닥인다. 말을 괜히 꺼냈나 싶어 우울해진다. 세차게 고개를 털고는 당신을 토닥이는 일에 집중한다.)

있잖아. 내가 자꾸 그런 말을 했던 이유는, 라하가 너무 거대해보여서 그랬어. 네가 이어받고 유지해 온 의지와 희망은 너무 커서 일반적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없는 규모야. 그런데 넌 그걸 해냈잖아? 그래서 내겐 네가 아주 커다란 거인같아 보이고, 또 그래서 네가 그런 말에 서운해 할 줄 몰랐어.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며 토닥인다.) 괜찮아, 그럴 수 있네. 괜찮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실수도 많아. 조금 서운하기는 했어도 내가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고. 그러니 그대가 스스로를 탓하면서 그대를 갉아먹지 않았으면 좋겠어.

... ... ... ... (눈동자를 굴리다가 묻었던 얼굴을 들고 다시 한 번 너와 시선을 맞춘다. 아직도 눈에 눈물이 고여있고 뭔가 뾰루퉁한 표정이다.) ...내가 훨씬 더 오래 살았는데 라하가 더 어른스럽게 말하네.

(장난스럽게 씩 웃는다. 한 쪽 귀가 파닥인다.) 그대를 좋아해서 그래. 좋아하는 이 앞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어린아이가 될 수도 있고, 현자가 될 수도 있고.

...그럼 이번엔 라하가 현자님이고 나는 사고친 어린아이야? 그것도 나쁘지 않은걸. (고여있던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기분좋게 웃어보였다. 수정공이 기원을 올렸던 화분에서 싹이 스윽 돋아나 쑥쑥 자라더니 하얀 백합이 피어났지만 영웅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지. (당신의 웃는 모습에 저도 기분이 좋아져, 양쪽 귀를 파닥거린다!) 그대가 기분이 좋아진 것 같으니, 다시 기원을 해볼까. 하얀 백합을 피워내야지!

(이전처럼 파닥이는 네 귀를 보고 소리내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백합 씨앗을 심은 화분을 살피려 고개를 돌려본다. 그리고 피어난 백합을 발견했다!) 어, 이것 봐 라하! 라하가 기원을 올렸더니 하얀 백합이 피어났어!

(하얀 빛을 뽐내는 백합을 자랑하다 눈을 살짝 문질러본다. 다시 봐도 하얀색이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당신을 바라본다.) 하나로 충분한가? 아니면, 더 해야하나?

(좋아하는 네 모습에 조금 들떴다! 서둘러 나머지 화분 세 개에도 백합 씨앗을 쁘리고 기대에 찬 눈으로 너를 바라본다.) 세 송이만 더! 이번엔 손잡고 같이 기원해, 아까는 라하만 했으니 이번에 같이 하면 하얀 백합이 나올 확률이 더 높아질 거야!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당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는다.) 어서 성장촉진제를 뿌리게! 분명 이번에도 하얀 백합이 자라날 거야! (무척이나 신난 표정이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네 손을 꼭 잡고서 다른 쪽 손으로 성장촉진제를 몇 방울씩 톡톡 뿌려넣는다.) 자라나라 하얀백합! 자라나라 하얀백합! (화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문을 외듯이 반복한다!)

(당신을 따라 화분을 바라보며 "자라나라, 커다래져라, 흰 백합을 피워라!" 하고 말해본다. 한 화분의 흙이 조금씩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빨리? (눈을 의심한다. 흙에서 뭔가 들썩들썩하고 있는데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너를 따라 커다래져라 흰 백합- 을 외친다. 식물표본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화분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무언가가 꿈틀하더니 초록색 줄기가 흙 위로 쑥 나오고 순식간에 커진다!)

(초록색 줄기가 끝을 모르고 계속 자라난다. 화분을 넘어설 정도로 두꺼워지는가 싶더니 뿌리가 화분을 깨트리고 튀어나왔다. 깨진 화분에, 흩어진 흙, 이상하게 커다래진 백합까지. 당황한 채로 백합...을 바라보다, 다른 화분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본다.)

어...? 어어? 커다랗게 자라라는 말은 하면 안되는 거였나 (엄청난 크기의 허연 꽃잎을 망연히 올려다보며 중얼거린다. 순간 다른 화분들에 담긴 흙도 꿈틀대는 걸 눈치채고 화들짝 놀라 네 팔을 꽉 잡으며 소리친다!) 아니야, 아니야! 커다래지지 마! 정상적이고 평균적인 크기로 빨리 자라기만 해!

내가 커지라고 해서 이렇게 된 건가...? 이런 실수를 할 줄이야... (조금 시무룩해진 모습이다.) 크게 자라지 말고, 빨리 자라라... (공과 당신의 말에 반응하듯 흙이 꿈틀거리는 것이 서서히 잦아들다, 새싹이 천천히 나오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하지만 확실히 나오는 게 보일 정도의 속도로!)

앗, 이번엔 제대로 자라나 봐! 라하만 커지라고 말한 거면 적당한 크기로 자랐겠지만 나까지 그렇게 말해서 더 커진걸지도 몰라. (네 귓가에 속삭이며 말하고는 다시 화분에 주문을 건다. 얼른 자라서 하얀 꽃을 피워라- 그러자 줄기가 서서히 자라고 잎사귀가 돋아나더니 곧 하얀 꽃봉오리가 생겼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꽃봉오리와 당신을 번갈아 쳐다본다.) 말하는 대로 자랄 수 있는 건가? 그럼... 매우 독특한 색이나, 여러가지 색을 같이 가지고 있는 꽃도 피울 수 있을까...? 이베르, 흰 백합이 얼마나 필요한가? (엄청나게 기대하고있는 것 같은 표정이다!)

음... 그건 아닌 것 같아. 노란색, 파란색, 붉은색 깻묵이 있는데 독특한 색으로는 이 세 가지 색상이 혼합된 백합이랑 하얀색, 검은색 백합. 이렇게만 나오는 것 같더라구. 흰 백합은 이제 충분해. 어차피 라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니까!

흠... (당신의 말에 조금 실망한 것 같다. 그래도 아직 꽃봉오리가 생기지 않은 화분에 대고 아주 작게 소근소근 말해본다.) 꽃잎의 끝으로 갈수록 색이 달라지는 하얗고 붉은 백합으로 자라나길. (조금 기대가 큰 듯 양손을 꼭 마주잡기까지 한다.)

(식물표본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본인도 조금 궁금해져 너와 화분을 번갈아보다가 화분 쪽으로 바짝 얼굴을 가져다대고 관찰한다.) 깻묵 중에 붉은색도 있었으니까... 흰색과 붉은색이 섞인 백합도 나올 가능성 있어, 근데 그럼 우리 머리색이랑 똑같아지는 거네?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가능하다면 기념으로 가지고싶어서 말이야. 과연 그렇게 자라줄지는 모르겠지만... (줄기의 끝에 작은 꽃망울이 생겨났다. 조금씩 커지고 길어져간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라하 완전 기대하고 있는 눈빛인데? (네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 붉은색 깻묵을 아주 조금만 화분에 더 뿌려준다! 완전히 여문 꽃봉오리가 하나 둘씩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두근두근! 저도 모르는 새 네 허리를 꼭 끌어안고 개화하는 백합을 바라본다!)

(꽃봉오리의 끝이 살짝 물드는가 싶더니 그대로 피어난다. 꽃잎의 끝자락에 붉은 빛이 도는 백합이다! 환하게 웃으며 당신을 바라본다.) 성공일세, 성공이야!

정말, 라하가 해냈어! 라하의 기원이 꽃에게 잘 닿았나 봐! (처음 보는 백합의 색에 본인도 신기해하며 뛸 듯이 기뻐한다! 곧 남은 두 송이 중 한 송이 꽃봉오리가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붉은 백합이지만 끝으로 갈수록 하얀 색이다!) 이것 봐! 이건 수정공 머리색 백합이라고 부르자!

그럼 저건 이베르 머리색 백합인가? 흐음... ...이 꽃들을 번식시켜서 같은 색을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 염색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일테니까. 조금 아쉬운걸. 그래도 꽤나 마음에 드는 색이야. (귀가 살짝씩 파닥인다.)

완전히 똑같이는 아니어도 비슷한 색 백합은 만들 수 있을 거야. 내가 갖고 온 백합 씨앗이 잔뜩 있으니 식물표본관에 연구를 맡기면 되잖아? 미래에는 '수정공 머리색 백합'과 '이베르 머리색 백합'이 레이크랜드에 가득할 수도 있겠네! 어때?

...만약 만들어지면, 정말로 백합 이름을 그리 지을 건가? 꽃 이름을 외우고 다니는 이들은 별로 없긴 하겠지만, 조금 부끄러울 것 같은데...

정말 그렇게 지을래. 왜냐하면 그 때쯤이면 우리 둘 다 고향에 가 있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사람들이 백합을 보고 우리의 붉은 색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머리색 백합이 피어난 화분에 어디서 났는지 모를 리본을 예쁘게 둘러묶는다. 타워로 가져갈 셈이다!)

흠... 생각해보니 그것도 좋은 것 같아. ...아. (좋은 생각이 난 듯 리본이 묶인 화분을 살펴본다.) 저번에 꾸몄던 것처럼 꾸며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저번에 꾸몄던 것? 그거 혹시 나를 가리키는 말이야? (미심쩍은 눈빛!)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손사래를 친다.) 그대 말고, 반짝이풀로 꾸몄던 그것 말일세. 리본도 붙이고, 끈같은... 것도 달고 그랬었지않나.

(끈같은... 네 표현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그거. 라하가 반짝이풀로 내 얼굴을 그리고 온갖 리본까지 여기저기 붙여놨던 그거 말이지? 광장에서 타워로 향하는 계단 초입에 걸어놨던 그거. 이 화분에다도 그렇게 리본을 잔뜩 붙이려고?

잔뜩 붙이려는 것은 아니고, 재료가 남아있다면 꾸미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말이네. 그대 얼굴과 내 얼굴도 그려넣어보고. ...음, 그럼 새 화분이 필요하려나. 꽃이 심어져있는 상태로는 꾸미기 힘들테니까.

라하가 원하는 걸 다 하려면 큰 크기의 하얀 화분이 필요하겠는걸. 다 꾸미고 나서 백합을 그 쪽으로 옮겨심으면 될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저것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 (엄청난 크기의 하얀 백합을 가리키며 곤란한 표정으로 너를 본다.)

확실히... 저걸 처리하긴 해야겠지. 어쩐다... (곰곰히 생각해본다.) ...픽시들에게 선물로 주는 건 어떨까. 이만한 크기의 백합은 찾아보기 힘들테니까.

음... 그렇지, 하긴 일 메그에는 이것보다 더 큰 꽃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고 있으니 거기 있어도 어색할 건 없겠다. 그 수많은 꽃들 중에 백합은 없었으니 픽시들도 새로운 꽃을 꽤 좋아할 테고. 그럼 여긴 페오에게 정리를 맡길까?

어쩐지 떠넘기는 기분이지만... 괜찮겠지. 으음... 조금이라도 꾸며두는 편이 좋을까... (당신을 힐끔 살펴본다.)

...!! (손을 들어 황급히 네 입을 막는다. 페오가 다 듣고 있을텐데 그걸 입 밖으로 말해버리면 어떻게 하냐는 눈빛이다. 어쩐지 머리 위에서 페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저, 저건 화분에 넣을 수도 없으니... 줄기에 리본을 매달아야 하나...?

(당신에게 입이 막힌 채로 주변을 둘러본다.) 리본도 달고, 백합 씨앗이 여분이 있다면, 그것도 조금 들려보내도 괜찮을 것 같네. 이것같은 크기는 안 나오겠지만... 마법으로 키울 수도 있을 것이고. 최대한 선물같은 느낌은 나게 해야지. 천으로 뿌리를 감쌀까?

그러면 질긴 천에 흙을 조금 담아서 묘목 뿌리 감싸듯 포장하고, 백합 꽃송이 아래엔 붉은색과 하얀색 리본을 달자. 백합 씨앗은 내가 많이 갖고 있으니까, 조금씩 소분해서 팩에 담아 선물상자에 넣어 보내면 어때?

좋아, 그 정도면 될 것 같군. 달리 더 넣을 것은 없겠지? 음... 흐음... 달리 생각나는 게 없는 걸... ...그 정도면 될 거야. 그래... (불현듯 픽시들이 저희의 머리색을 닮은 백합을 탐내지는 않을까 싶어진다.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당신을 보며 빙긋 웃는다.)

...? (조금 의아하게 느껴지는 네 행동과 커다란 백합, 그리고 머리색 백합을 번갈아 보다가 씨익 웃는다. 갖고 있던 씨앗들을 잘 나눠 담아 자그마한 상자에 넣어 커다란 백합 옆 한켠에 놓아두고, 네 옆구리를 콕콕 찌른다.) 라하, 라하. 얼른 우리 머리색 백합에게 배니시 마법을 걸어 줘.

(제 마음을 읽은 것 같은 모양새에 눈을 크게 떴다가, 당신을 꼭 끌어안는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하얗고 붉은 백합에 배니시를 건다.) 흠... 안 들켰으면 좋겠는데.

(곧 머리색 백합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에테르의 흐름을 느낄 수 있으니 괜찮다. 식물표본관의 수많은 화분들 사이에 적당히 놓아두고 붉은 리본끈과 하얀 리본끈을 꺼내들어 커다란 백합송이 아래에 느슨하게 묶는다.) 후후, 페오가 우리 것을 탐내진 않겠지? 리본은 이 정도면 돼?

페오라면 탐내지는 않을 것 같은데. (리본끈의 끝은 조금 매만진다.) 음. 누가 보더라도 멋진 선물이라고 할 거야. 이제 페오를 불러볼까...

(또다시 네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속닥인다.) ...그러니까, 페오한테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꽃이 너무 커져 버려서 어떻게 할까 생각했는데, 픽시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일 메그에 가져다두면 어떨까 싶어 페오를 불렀다고. 그러면 되겠지?

(귀를 한 번 파닥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거짓말도 아니고, 괜찮을 것 같네. 그렇지? (고개를 살짝 들자, 페오가 빙글 돌면서 나타난다.)

(너를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페오를 바라본다. 페오는 자초지종을 듣더니 예의 그 발랄한 목소리로 꺄르르 웃으며 커다란 백합에 알 수 없는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백합이 쏙쏙 줄어들어 아주 자그마한 크기가 되었다! 아마 이대로 가져가 일 메그에서 백합에 걸린 마법을 풀 생각인 듯하다!) [나의 소중한 친구와 내 스네야크가 준비한 마지막 선물인 것 같지 뭐야? 붉고 하얀 꽃도 탐나지만 수정으로 된 나의 친구가 마법을 걸어놓은 데엔 다 이유가 있겠지?] (다시 한 번 웃음소리를 흩뿌린 페오는 '찬란히 빛나는 너희의 여행을 계속 지켜볼게!' 라는 말만 남기고 백합과 함께 사라졌다.)

(페오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다 당신에게 눈을 돌린다.) 자, 그럼... 새 화분을 꾸며볼까. ...마지막 선물이라는 말은 조금 걸리지만.

음, 픽시족은 마법에 능하지. 어떤... 기류를 감지한 건 아닐까 싶어. (식물표본관 사람들에게서 눈처럼 하얗고 가볍기까지 한 화분 세 개를 건네받았다. 아직 은신마법이 풀리지 않은 머리색 백합 화분까지 들고 가자는 듯 너를 바라본다.) 여기서 꾸밀 건 아니지?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어!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졌다. 귀를 소리가 나도록 파닥이며 당신의 옷자락을 잡는다.) 그, 그렇지. 탑으로 돌아가서 꾸며야지. 어서 가지, 어서. 주변을 잊는 건 버릇이 된 건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후후. 갈수록 내가 더 좋아져서 그만큼 주변을 잊게 되는 거라고, 내 멋대로 생각할래. (세차게 파닥대는 네 귀를 만지고 싶지만 화분들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아쉬움을 삼키며 너와 함께 타워로 향한다.) 그런데 쓸 만한 재료가 남아있으려나?

글쎄, 조금 쯤은 남지 않았을까. ...설마 내가 그대를 장식할 때 다 썼을 리는 없고. 아, 화분은 이리 주게. 무겁지 않나. (당신이 들고있던 화분 중 몇 개를 제가 든다. 귀가 여전히 파닥거리고있다.)

라하가 어둠의 전사를 예쁘게 장식할 때 다 써버렸다고 말하면? (화분 몇 개가 제 손에서 떨어져나가니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뜀뛰듯이 걸어가 전송장치를 타고 얼른 성견의 방 문을 열더니 제 가방을 마구 뒤진다. 갖가지 염료와 붓, 종이를 오리고 붙여 만든 라하 얼굴과 영웅 얼굴이 나온다!)

(화분을 주변에 적당히 내려두고는 당신이 꺼낸 것들을 구경한다. 붓을 들고 솔 부분을 만져보기도 하고, 종이 얼굴을 앞뒤로 살펴보기도 한다. 당신의 시선이 저에게 닿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종이 영웅 얼굴을 슬쩍 챙겨본다.) 다른 것들도 더 있나?

음, 전에 왕창 붙이고도 남은 리본 조금이랑 보석조각들이 더 있네!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가방을 다시 여미고 꺼내놓은 것들을 살펴보는데 어쩐지 종이 얼굴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너를 닮은 종이 얼굴만 외로이 놓여있으니 조금 미심쩍은 눈빛으로 너를 바라본다.)

충분할 듯 싶네. 이번에는 반짝이풀 대신 물감으로 그리는 건가보군. 물에 씻겨나가지는 않나? (염료를 살펴보다 당신의 눈빛에 삐걱대며 고개를 돌린다.)

흐응- 그래? 우리 모습을 화분에 직접 그리려면 힘드니까, 염료와 붓으로 배경만 그리고 종이로 만든 라하와 내 얼굴을 붙이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상하게 내 얼굴만 감쪽같이 사라졌네. 별 수 없지, 외로운 라하 화분만 덩그러니 남아있어야지 뭐.

(귀를 살짝 늘어뜨리곤 챙겼던 종이 영웅 얼굴을 당신에게 돌려준다.) ...수정공이 홀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후후. 찾았다, 거기 있었구나. (종이 영웅을 받아드는 척 하다가 다시 네 손에 꼭 쥐어준다!) 이제 종이 수정공과 화분은 외롭지 않을 거야. 나는 라하를 붙일 테니까, 라하는 나를 붙여주면 되겠네. 어디 보자... 나는 까만 밤하늘에 별을 그리고 라하를 붙일래. 아이들도 그려넣고!

(제 손으로 돌아온 종이 얼굴을 만지작대면서 고민한다.) 흠... 좋아, 이렇게 해야겠군. 완성될 때까지는 보면 안 되네! (붓과 염료 조금과 화분을 챙겨서는 당신에게서 살짝 떨어진다!)

앗, 나는 그래도 말해줬는데. 좋아, 그러면 라하도 내 화분 완성 전까지 보면 안 돼! (등을 돌려 앉으며 화분을 가렸다. 화분에는 염료가 칠해질 예정이지만, 종이 라하 얼굴에는 일전 네가 어둠의 전사를 꾸몄던 대로의 장식이 들어갈 것이다!)

(열심히 화분을 칠하는 것 같다. 중간 중간 "흐음..."하는 소리나 "앗,"하는 작은 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하다.)

(네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내려앉는다. 화분을 검은색으로 깔끔하게 칠하고 하얀색, 쨍한 노란색과 핑크, 연두색 염료로 콕콕콕 별들을 찍어낸다. 그리고 종이 라하 얼굴의 양 볼에 눈물모양 보석을 세 개씩, 조르륵 붙이고 머리에 붉은 리본도 달아주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너를 본다.)

(화분을 꾸미는 데에 집중하고있다. 화분이 노란색으로 덕지덕지 칠해진 가운데, 중간에 검은색이 부채꼴 모양으로 칠해져있다. 검은색 염료가 아래로 흘러내린다. 공이 조금 당황하며 노란색 염료로 덮어보지만, 검은색 염료와 섞여 오히려 더러워져간다... 일단 종이 영웅 얼굴을 붙여 가려본다.)

(음... 미술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다. 원초세계의 개인 하우스에 같이 그림 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놓았는데 싫어할지도 모르겠네. 네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으니 계속 너를 지켜보기로 한다! 어떻게 꾸미려고 했던 거지?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검은 부분에 하얀 염료로 점을 찍어본다. 염료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불만스러운 듯 꼬리가 바닥을 탁탁 친다.) 뭐가 문제지... 하아...

어머나- 홀민스터에서 빛을 가르고 밤하늘을 되찾는 어둠의 전사 아니야? 그런데 큰일이네, 밤하늘의 별들이 흘러내리고 있어. 아마 그 때 라하가 어둠의 전사에게 거짓말을 해서, 얼굴을 보인 진짜 하늘과 별이 슬퍼하고 있었기 때문일 거야. (네 바로 뒤쪽으로 다가가 조곤조곤 말한다!)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당신을 바라본다. 황급히 제 몸으로 화분을 가려본다.) 완성될 때까지는 보지 않기로 했지 않나! ...다 보여버렸다니... 하아... (고개를 돌려 화분을 바라본다.)

후후, 그렇지만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살짝 보였는걸. 그나저나... 계속 화분을 가리고 있을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라하가 그려넣은 별들이 계속 울고 있을 텐데!

아차... (부리나케 다시 검은색 염료로 흰 염료가 흐른 곳을 덧칠해본다. 조금 회색빛이 된 것 같지만 노란색을 칠한 곳보다는 상황이 낫다.) 뭔가 더 꾸미면 좋을 것 같은데... 염료를 더 칠하면 더 엉망이 될 것 같단 말이지.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내본다!)

(슬쩍, 네가 쓰던 염료통을 들여다본다. 화분의 크기에 비해 줄어든 염료의 양이 엄청나다...! 화분 한 번, 네 얼굴을 한 번 바라보다가 테레빈유를 꺼내들어 네게 불쑥 내민다.) ...지우고 다시 하자!

지우기까지 해야하나...? (조금 시무룩해진 모양새다. 화분을 물끄럼 바라보다 테레빈유를 받아든다...)

하지만 그렇게 두껍게 칠하면 2주가 지나도 마르지 않을 거야, 그러면 화분을 잡는 손에 염료가 잔뜩 묻어버릴 텐데? 우리 아이들에게 잔뜩 묻어버릴지도 모르고. 다 지우지는 않아도 되고, 조금만 발라서 빛과 어둠을 덜어내자. 어둠은 좀 많이 덜어내고 그 위에 다시 얇게 덧칠하면 돼! 물론 난 흘러내리는 하늘과 별도 아주 좋지만 이건 순전히 화분이라서, 잘 마르지 않을까봐 그러는 거야! 라하의 예술적 감각을 내가 몰라봐서 이러는 게 아니라구!

(조금 뚱한 표정이다.) ...불 크리스탈을 쓰면 조금 더 빨리 마르지 않겠나. 본디 따듯하면 금방 마르게 되니까...

(그럴싸한데? 네 말을 경청했다는 뜻으로 주섬주섬 불 크리스탈 몇 개를 꺼내든다. 약간의 에테르를 주입해 불속성이 더 강해지도록 만들어 화분 주변에 빙 둘러 놓아본다. 마르려나?) 어, 음... 이렇게? 근데 빨리 말릴려면 아예 불을 피워야 할 것 같아.

흐음... (화분을 살펴본다. 조금씩 말라가는 것 같다! 눈이 말라가는 느낌에 몇 번 깜박이고는 당신을 바라본다.) 불까지는 피우지 않아도 될 것 같네. 내가 보기엔 말라가고있는 것 같아. (공이 안 보고있는 사이, 두텁게 바른 염료가 말라가며 조금씩 금이 가고있다...)

그렇다면 다행인걸. 괜찮은지 어디 조금 만져볼까. (불 크리스탈로 둘러싸인 화분에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대고 톡톡 두드려보고 눌러보기도 한다. 음, 확실히 굳어가는 것 같기는 한데...) 라, 라하. 염료가 말라붙으며 지진을 일으키고 있어! 어둠의 전사가 세계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구!

...? 지진이라니. (화분을 자세히 살펴본다. 염료가 갈라지고 몇몇 조각은 떨어지기까지 한다. 당황해서는 염료를 덧바르려한다!!) 이, 이게 왜 이러지...

아... 염료를 너무 두껍게 발라서, 굳으면서 크랙이 생겨버렸나봐. 역시 그냥 두는 건 무리였나. (떨어져나온 조각 하나를 들어 네게 자세히 보여준다. 완전히 바짝 말라 점성과 탄성을 잃은 것이 꼭 석고 조각 같다...!) 어, 어쩌지. 다 떼어내긴 싫은 거지?

...떼어내야지, 어쩌겠나. 말라버려서 테레빈유를 바른다고 지워지지도 않겠군. (시무룩한 목소리다.)

흐음... (시무룩해하는 네 옆에서 뭔가를 생각하더니, 본인이 꾸민 라하 화분을 갖고 온다. 영웅 화분 옆에 라하 화분을 바짝 붙여놓고 최대한 네 목소리를 흉내내며 본인이 라하 화분인 척, 영웅 화분에게 말을 건다.) 힘을 내, 할 수 있네. 그대는 내가 가장 동경하는 영웅이자 제일 사랑하는 내 연인이 아닌가. 꼭 멋들어진 세계를 배경으로 당당히 지낼 수 있게 될 거야. 곧 마주하게 될 새로운 미래를 위해 후회 말고 나아가게. (키득키득! 웃으며 힐끔 너를 바라본다.)

(당신의 모습에 작게 웃어버린다. 조심히 종이 영웅 얼굴을 떼어내고, 마른 염료들을 긁어낸다. 아직 마르지 않은 부분에는 테레빈유를 발라 닦아내고.) 그래, 멋들어진 세계가 배경이 될 수 있도록 해야지.

(다행히도 종이 얼굴은 멀쩡하다! 두꺼운 종이를 쓰길 잘 했다 생각하며 그것을 집어들어 제 얼굴을 가린다. 마치 인형놀이를 하듯 종이 영웅 얼굴을 잘게 흔들며 네게 말을 건다.) 영웅은 기대하고 있어! 얼른 라하 화분이랑 같이 있고 싶어! (종이 얼굴을 들지 않은 다른 한 쪽 손으로는 적당량의 노란색 염료를 골고루 묻힌 붓을 네게 건네준다. 살살 눈웃음을 지으며.)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화분에 조심히 붓질을 한다. 아까처럼 덕지덕지 칠해지지 않도록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염료를 골고루 펴바른다. 꽤나... 어렵다...!) ...균일하게 칠하는 것이 이리 어려울 줄은 몰랐네.

그러네, 화분이 둥그런 구면인데다가 밝은 색이라서 더 그래. 그래도 이번엔 멋지게 잘 되었는걸? 종이 영웅과 종이 라하가 아주 좋아하고 있어! (즐거운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까처럼 불 크리스탈로 화분에 칠해진 염료를 꼼꼼히 말려본다!) 말리고 나서 검은색을 칠하면 잘 될 거야!

(염료가 마르기를 기다리고있다. 한시라도 빨리 칠을 하고싶은데 도통 마르질 않는 것 같아 답답한 모양새다.) 더 빠르게 말리는 방법은 없나? 너무 느리게 마르는 것 같아.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마르고 있는데도? 후후, 내 앞이라 그런가 오늘은 우리 수정공의 참을성이 영 바닥이네. (킥킥대다가 바람 크리스탈을 꺼내놓고 작은 목소리로 페오에게 기원했다. 페오의 웃음소리가 울린다 싶더니 곧이어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화분 주변에 머문다.) 음, 열기를 지닌 바람까지 불고 있으니 더 빨리 마를 거야. 조금만 더 있으면 또 칠해도 될 것 같은데? 이 따뜻한 바람은 라하가 칠을 마칠 때까지 계속 사라지지 않을 테고 불 크리스탈의 열기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이 뒤부터는 이제 기다리지 않고 바로 덧칠해도 괜찮을걸? 너무 많이는 말고!

(눈을 반짝이며 화분에 발라진 노란 염료를 만져본다. ...잘 마른 것 같다! 조심스럽게 다시 검은색 염료를 바른다. 두터워지지 않게 조심조심...) ... ... ... ... ...좋아, 이정도면 꽤 잘 칠해지지 않았나!

어머나. 완전 잘했잖아, 내가 칠한 것보다 더 깔끔하게 잘 되었는데? 내 라하는 정말로 못하는게 없네! (종이 영웅얼굴과 함께 신나하며 화분을 요리조리 살펴본다. 아까 종이 얼굴이 붙어있던 위치를 대략 가늠하여 그것을 척 대어본다.) 너무 멋져. 별들이 생기면 아름다워지기까지 하겠지!

분명 멋있어질 거야. (씩 웃으며 귀를 파닥인다. 하얀색 염료를 덜어내본다. ...전번에는 물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았지, 물을 조금만 섞어서 점을 찍는다. 뻑뻑해서 둥근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 물을 더 섞고 다시 점을 찍어보면 주르륵 하고 흘러내린 흰 자국이 생긴다.)

앗. 아? (흘러내린 자국을 바라본다.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이거... 꼭 어둠에 휩싸여서 흘러내리며 사그라드는 이질적인 빛 한 줄기 같아. 나 이거 마음에 드는데? 하지만 너무 많으면 곤란할 테니 물은 조금만 섞어서... 동그란 모양이 힘들면 아예 별모양을 작게 그리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염료를 더 덜어내어 섞는다. ...너무 뻑뻑한 것 같아 물을 섞는다. ...이번에는 너무 묽어졌다. 몇 번을 더 반복하고나서야 적당한 정도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작은 별 모양을 여럿 그리니 꽤 멋진 밤하늘이 되었다! ...그리고 적당히 개어진 하얀 염료가 잔뜩 남았다...)

(엄청나게 남아도는 하얀 염료를 애써 무시하며 네가 잘 꾸민 영웅 화분을 향해 박수를 친다!) 멋진 세계가 되었네. 이제 베르 화분이랑 라하 화분이 같이 있을 수 있어! 내 얼굴까지 붙이고 보존마법을 거는 건 어때? 그럼 오래오래 백합이 시들지 않을 거고 화분의 그림도 빛바래지 않을 거야! (염료는... 염료는 정말로 애써서 무시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어쩌지, 아무데나 버리면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공예관의 투나라면 쓸 데가 있지 않을까...? 공예관에 가져다줘야 하나...?)

보존 마법에 시들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었나... 그러면 어서 붙이고 마법을 걸지. 정말... 힘들었던 것 같군. 그래도 재미는 있었지만. (왕창 남은 하얀 염료를 힐끗 바라보다 스르륵 눈을 돌려버린다.)

어머. 힘들었어? 큰일이네... 라하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할 거라 생각했거든. 그래서 원초세계에 있는 내 집에 라하랑 같이 그림 그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놨는데, 얼른 가서 치우고 와야 하나? (조금 장난스러운 목소리다. 종이 영웅 얼굴을 다시금 화분에 가져다대어 이리저리 놓으며 너를 본다.) 이쯤? 아니면 여기?

음... 이쪽으로, 여기 중앙에. (당신의 손을 조심스레 끌어 위치시킨다.) 그림 그리는 게 조금 힘들긴 했지만, 싫지는 않았네. 재미있기도 했고. 그러니 굳이 치우지는 않아도 되네.

그런 거라면 정말 다행이야. 온갖 그림도구들을 잔뜩 가져다 놨거든. 그래서 물 섞은 염료가 많이 남더라도 그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걱정할 필요 없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게 해놨으니까. (킥킥 웃으며 네가 제 손을 끌어간 곳에 종이 영웅 얼굴을 꾹꾹 눌러 붙인다. 그리고 보존마법을 써 달라는 듯 반짝이는 눈빛으로 너를 바라본다... 뭔가 멋진 광경을 기대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네가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마법을 거는 모습.)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면 조금... 부담스럽거나 하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니. 얼마든지 즐길 수 있지. (화분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지팡이를 꺼내들어...! ...툭, 하고 화분을 지팡이로 건드린다. 지팡이에서 약한 빛이 새어나오더니 화분에 흡수된다.)

... (실망! 조금은 풀죽은 표정으로 두 화분만 톡톡 건드려댄다.) 라하가 지팡이로 바닥 내리찍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뭐, 보존마법이 잘 걸린 거라면 된 거지 뭐... 그래서, 저 염료는 어떻게 하지. 정말 공예관에 갖다줄까? 그러니까... 저기 멀리서 이쪽을 보고 있는 아이들이 사고치기 전에.

(당신의 말에 지팡이로 바닥을 통, 내려친다. 주변에 반짝반짝한 빛들이 흩뿌려졌다가 사라진다. 당신을 물끄럼 바라보다 염료로 눈을 돌린다.) 흠... 공예관에서도 쓸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물론 아이들이 염료에서 헤엄치게 둘 수는 없지만. ...아이들의 발도장이라도 찍어볼까. 그래도 많이 남을 것 같은데... (깊이 생각에 잠겼다.)

(키득 웃으며 흩날리는 작은 빛덩이들을 잡으려고 손을 공중에 휘저어본다. 어느 날의 네가 꽃잎과 솜풀들을 잡으려고 그리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네 말이 끝나는 순간 영웅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그 순간 아이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물 섞인 염료 위로 철퍽, 다이빙... 하기 전에 잽싸게 커다란 바구니를 받쳐 아이들을 받아낸다! 염료를 향한 욕망을 차단당한 아이들이 불만에 차서 삐약거렸다.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너를 바라본다...) 봤지. 절대로 절대로 발도장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음, 확실히 그래보이는 걸... (당신에게서 아이들을 받아들어서는 바닥에 내려놓는다. '더이상은 어린 아이가 아니니, 조금은 점잖아지는 건 어떨까...'하며 아이들에게 꾸중 아닌 꾸중을 해본다. 아이들이 더욱 불만스럽게 삐약거린다! 당황해서는 당신을 올려다본다...)

... 우와, 라하 너무하네. 자기는 근 120년이나 살아놓고 그게 아이들에게 할 소리야? 우리 아이들 따지고 보면 아직 한 살도 안 된 거라구. 그리고 누구누구는 스무 살이 되어서도 계속 아이처럼 굴었잖아? (아이들이 그렇다는 듯 번갈아 삐약댔다. 네게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당신의 말에 당황한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런 말을 굳이 지금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리고, 아이들은 성체로 변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는 컸다고 볼 수 있지 않겠어... (아이들이 삑삑 울어댄다. 아무래도 부정하는 것만 같다...)

그런가? 뭐 그럼 다섯 살 정도 되었다고 치자. 그래도 여전히 어리잖아, 라하랑 내 나이에 비하면 아직도 한참 멀었거든? 그런 소리는 백 년 정도는 지나고 해야지. (미소지으며 물에 개 염료를 과감하게 염료통에 들이붓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헤집지 못하도록 염료툥 뚜껑을 굳게 닫았다. 아이들이 온 몸에 염료를 묻히고 뒹구는 것보다야 차라리 염료를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그 후 아이들을 하나씩 들어다가 라하 화분과 베르 화분 근처에 잘 배치(?)해본다. 화분 근처에 자리잡은 아이들은 놀랍게도 얌전해졌다!) 라하, 우리 아이들이 화분 곁에 있고 싶었던 모양이야. 이건 그러니까... 기록을 남겨달라는 뜻이겠지? 알라그 석판 기기로 사진 찍을까? 아이들과 머리색 백합과 우리 화분.

흐음... (당신의 팔을 약하게 잡아당긴다.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대며 제가 하는 것을 바라본다. 당신을 화분의 뒤쪽에 앉히고... 당신의 어깨에 아이들을 하나씩 얹어본다. 아이들이 신나서는 삑삑 울어댄다.) 기왕 기록을 남긴다면, 다같이 있는 게 더 낫겠지. 안 그런가?

흐음... (샐쭉한 표정으로 너를 보다가 어깨의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남은 아이 하나를 네 머리 위에 올린다. 한 마리니까 안 무겁겠지?) 이러고 찍는 거야? 그럼 나보다 팔이 좀 더 자유로운 라하가 내 기기로 사진 찍어줘. 내가 기기를 조작하다간 아이들이 어깨에서 떨어질 것 같아.

그거야 상관은 없네만... 음... ...아니야. (당신의 것과 같은 류의 알라그 기기는 만져본 적이 없지만, 다른 것과 같겠지 하는 마음으로 넘겨버린다.) 이리 주게.

(조심조심 손을 움직여 네모난 기기를 네게 건넨다.) 거기 화면 중앙 하단에 보이는 버튼을 누르면 우리 모습이 찍힐 거야. 팔을 쭉 뻗고 각도를 잘 맞춰야 해! (아이들이 삐약삐약 울었다.)

(기기를 건네받고는 팔을 쭉 뻗어본다. 화면에... 모두가... 나오지... 않는다. 알라그 기기를 쥔 손을 이리저리 꺾어보며 각도를 맞춰보려하지만 영 뜻대로 되지를 않는다. 불만스럽게 앓는 소리를 낸다.)

잘 안 돼? (슬쩍 몸을 기울여 네가 하는 양을 살핀다. 어깨에 경사가 지자 아이들이 삑삑 불만을 표한다. 이런!) 으음... 라하, 누가 찍어줘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우리를 기록하는 모드로는 각도가 영 안 나오니까. (네가 알라그 기록 시스템으로 촬영하자고 할까 봐 얼른 덧붙인다.) 라이나 부를까?

...이 모습을 라이나에게 보이는 것은 조금... 차라리 기록 시스템으로 기록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그대의 기기로 데이터를 옮기면 되니까.

하지만... 나는 기록시스템을 다룰 줄 모르는걸. 라하가 거기 있는 데이터를 삭제했다고 말만 하고 실제론 가지고 있어도 난 알 수 없잖아. 나중에 엄청나게 민망한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 막... 그 기록시스템이 밖에 돌아다니면서 우리 모습을 다 뿌리고 다닌다거나. (미심쩍은 눈빛!)

(눈을 슬쩍 피한다.) ... ... ... 그대의 하나뿐인 꽃을 못 믿는 건가? 꼭 삭제하도록 하겠네. 정말이야.

...눈은 왜 피해? 정말 내 기기로 옮기고 삭제할 거지? 그러면 여기, 라하도 이거 받아. 앞으로 네 것이 될 알라그 석판 기기야. 원초세계에서도 작동하는 걸 확인했으니까, 우리가 여행을 갈 수 있게 되면 이걸로 추억을 기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네 것도 마련했어, 자! (새 알라그 석판 기기를 네게 내밀고 자신의 것은 다시 받아들었다. 네 어깨에 잠시 올려두었던 아이도 다시 제 어깨로 옮기고, 얼마 전 제가 발로 뻥 차버렸던 알라그 기록 시스템의 출현을 기다린다.)

(새로 받은 기기를 만지작대다, 기록 시스템을 기다리는 당신을 한 장 찍어본다. 만족스럽게 기기를 품에 넣고 기록 시스템을 부른다. 어디선가 기록 시스템이 빙글 돌며 나타났다.) 그럼 이제, 사진을 찍어볼까.

...! (당장 삭제하라는 말을 하려고 숨을 들이키다 피식 웃어버렸다.) 어차피 이렇게 함께 있는데, 내 모습을 그렇게 또 갖고 있고 싶어? 커다란 내 인형도 있고 내가 준 반지도 있는데. (씨익 웃으며 알라그 기록시스템을 힐끗 보고는 포즈를 취한다. 아이들 때문에 조금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지만!)

그렇다기보다는... 내 석판 기기의 첫 사진은 그대로 하고 싶어서. ... ... ...싫다면 지우도록 하겠네. (기록시스템이 우웅-하는 소리를 내더니, 기체의 무늬를 따라 조금씩 빛이 나기 시작한다.)

이럴 수가. 난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 했는데! 라하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자꾸 본인이 라하가 아니라고 우겨대는 통에! (보란 듯 입을 삐죽이다가 알라그 기록 시스템이 작동하자 얼른 표정을 바꾼다.) 웃자, 라하!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화분과 아이들, 너와 영웅의 모습이 기록된다!)

그, 그래도 지금 이렇게 함께 있으니 된 것 아니겠나. (어설프게 웃어보인다. 기록 시스템이 빙글, 돌더니 가까이 다가온다. '기록 완료, 반복합니다, 기록 완료' 하는 음성을 재생한 기록 시스템 옆에 알라그 석판 기기를 가져다대고 이리저리 조작한다. ...알라그 석판 기기로 데이터가 옮겨진다!)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옮겨진 것 같다. 네 기기에도 옮겨졌을까? 알라그 기록 시스템과 너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제 기기를 받아들고 이미지 데이터를 확인한다. 좋아!) 아, 다 옮겨진 것 같아. 그럼 이제 알라그 기록 시스템의 기록은 삭제해 줘야지, 라하~? (기록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않고 대뜸 그 말부터 꺼낸다! 감상보다 기록 삭제가 더 중요하다!)

(제 기기에도 데이터가 옮겨진 것을 확인하고는 어깨를 으쓱인다. 당신을 옆으로 데려와서는 기록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를... ...이렇게 해서... ...이걸 누르고... ...하면 데이터가 삭제되네. 그리고 이걸... ...이렇게 하면... 복구가 불가능해지고.

흐음... (뭔가를 조작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알 듯 말 듯 하다. 알라그 기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으니 어쨌든 네 말을 믿어야만 한다.) 그래서, 복구 불가능하게 삭제했다는 말이지? 실제로는 삭제를 안 했어도 나는 몰라. 뭐... 라하가 거짓말 안 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나는 의심 않고 믿어야지!

뭐... 이제는 내 기기도 있고, 거기에 데이터가 있으니 기록 시스템에 있는 것을 삭제해도 상관은 없지. (문득 무언가의 데이터가 생각난다. 데이터가 아직 남아있던가... 당신이 안 보는 사이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그렇...지. 얘를 원초세계에 갖고 갈 순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전에 여기에 담은 기록도 모조리 네 알라그 석판 기기에 옮길 셈인 거지? (이미 다 간파했다는 듯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며 네 귓가에 볼을 가져가 부빈다. 아이들은 어느 새 어깨와 머리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와 잘 놀고 있다.) 흐음... 하지 말라고는 안 할게, 왜냐하면 나도 원초세계에 우리 초상화도, 라하 인형도 다 가져갈 거거든.

.....그렇게나 티가 많이 나나...? (귀를 파닥이며 제 얼굴을 매만져본다.) 뭐, 그대가 이미 알고있으니 굳이 나중에 옮길 필요는 없겠지. (알라그 기록 시스템을 조작한다. 데이터가 조금씩 알라그 석판 기기로 전송된다. 기록 시스템에 남은 원본 데이터를 꼼꼼히 지우기도 한다!)

(알라그 기록 시스템을 천천히 쓰다듬어본다. 차가운 쇳덩이인데 어쩐지 온기가 도는 것만 같다.)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꼭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라하도 그래?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마무리짓고 있어?

... ... ... 그대가 이 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아무런 준비 없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으니까. (옅게 미소를 짓는다.)

....... (말없이 네 붉은 눈을 들여다보다가 너를 꼬옥 끌어안는다. 알라그 기록 시스템이 기다렸다는 듯 지잉, 울리며 둘의 모습을 기록하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도... 그 때와 지금의 '준비'에는 조금 다른 점이 있는 거지? 지금은 우리의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럼 오늘은 이만 잘까, 라하. 우리의 내일을 준비해야지. 그래야 수정이 잠식한 네 몸도 얼른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까. (팔과 손으로도 모자라 네 로브까지 잠식해가는 결정들을 어루만진다. 이런 네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롭지만 그럼에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네 두 눈가에 차례대로 입을 맞추었다.) 얼른, 연구의 성과도 내고... 그래서 꼭 우리의 소망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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